웅장한 자연 경험…울창한 녹색 체험…‘롱테이크’로 구현

여러분은 ‘롱테이크(long take)’라는 촬영 기법을 들어본 적 있나요? 동영상을 촬영할 때 긴 시간 동안 끊지 않고 장면을 촬영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1917’은 전체가 하나의 롱테이크로 촬영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러한 촬영 기법 덕분에 관객들은 마치 전장에 서 있는 듯한 강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죠.

롱테이크 기법을 공간 계획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눈이 한 대의 카메라 렌즈와 같다고 생각해 보세요. 끊김이 없는 한 컷의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연속된 경관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계획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롱테이크로 구현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공동주택의 조경공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에 위치한 평촌센텀퍼스트가 주인공인데요. 평촌센텀퍼스트는 2023년 11월에 준공한 총 23개 동, 2886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로 차별화된 커뮤니티 시설과 조경공간으로 많은 입주민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평촌센텀퍼스트의 롱테이크로 구현된 조경공간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어지는 연속된 경관 속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매력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1.jpg

파고라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켜켜이 배열된 주동
 

하늘 덮은 녹음, 숲속 산책로 연출

평촌센텀퍼스트의 롱테이크 촬영은 단지 남쪽의 흰색 파고라에서 시작됩니다. 104동과 105동 사이에 자리 잡은 단층의 직사각형 파고라는 단지 북쪽으로 뻗어가는 연속된 경관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공간이죠. 파고라를 기준으로 마치 책장에 꽂혀 있는 책처럼 양옆으로 켜켜이 배열된 주동을 살펴보세요. 이 사이를 연달아 가로지르며 경험하게 될 자연이 벌써 기대됩니다. 

먼저 파고라로 이어지는 동선이 정면에 자리합니다. 흰색의 파고라와 색감을 맞추기 위해 진입로는 밝은 회색의 포천석을 깎아 포장재로 사용했죠. 길 양옆으로는 배롱나무와 회양목을 심어 울창한 녹음을 조성했습니다. 새순을 내는 힘이 좋은 배롱나무는 사방으로 뻗는 구불구불한 가지와 그 가지에 달린 잎이 매력적인 수종인데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백일가량 붉은 꽃의 향연이 이 공간을 더욱 화사하게 물들일 겁니다. 

이곳에 특별함을 더하는 요소를 하나 더 꼽으라면, 배롱나무가 심어진 갈색 플랜터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플랜터를 활용해 배롱나무를 한층 높은 곳에 심어서 수목의 지하고를 높여 울창한 느낌을 배가시킬 수 있었죠. 이렇게 하늘을 가득 덮은 녹음을 통해 마치 숲속 산책로와 같은 공간감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갈색의 플랜터 색감 또한 수목의 줄기 색깔과 어우러지며 자연의 빛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데요. 내후성 강판으로 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금속 철판에 갈색 분체도장을 입힌 것이죠. 

배롱나무를 두른 파고라를 지나 그리 넓지 않은 폭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흰색의 회랑 구조물이 나타납니다. ‘그랜드아케이드’라는 이 구조물은 평촌센텀퍼스트가 선사할 연속된 자연 속 경험을 이끌어 줄 중요한 안내자가 돼주죠. 그랜드아케이드가 롱테이크로 구현된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2.jpg

산책로를 따라 만날 수 있는 흰색의 회랑 구조물 그랜드아케이드
 

그늘 아래서 자연 속 미술품 감상

첫째, 그랜드아케이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휴게공간이 돼줍니다. 녹색의 자연을 가로지르는 흰색의 유려한 곡선 구조물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디자인이죠. 그뿐 아니라 중간중간 벽을 세우거나, 반대로 열어주거나 혹은 구멍을 뚫어 햇빛을 자유자재로 들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림자가 조금씩 변주되며 변칙적인 휴게공간을 만들 수 있죠. 

둘째, 그랜드아케이드는 주변 녹지를 다채롭게 엮어내는 매듭 역할을 합니다. 그랜드아케이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수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요. 먼저 큰 규격의 팽나무를 곳곳에 심어 탁 트인 캐노피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팝나무와 후피향나무, 공작단풍 등의 교목을 심어 풍부한 경관미를 만들어내죠. 가늘게 찢어진 모양의 잎 때문에 세열단풍이라고도 불리는 공작단풍은 일본에서 개발한 원예종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한 마리 공작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죠. 수목 아래로는 흰줄무늬비비추와 관중 등 잎의 형태와 질감이 독특한 초화류를 섞어 심어 섬세하게 연출했습니다. 요즘 같은 초여름 손바닥만 한 자줏빛 꽃을 피워낸 붓꽃은 푸릇푸릇한 이곳에 가히 방점을 찍습니다. 

 

3.jpg잔디밭 위로 놓인 미술 장식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그랜드아케이드


셋째, 그랜드아케이드는 미술 장식품을 감상할 수 있는 회랑 역할을 합니다. 그랜드아케이드가 가로지르는 잔디밭 곳곳에 다양한 미술 장식품이 전시돼 있는데요. 입주민들이 그늘에서 자연 속 미술 장식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일정 규모의 연면적을 가진 건축물에는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미술 장식품을 설치하게 돼 있는데요. 평촌센텀퍼스트는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 장식품을 어떻게 공간과 엮어내고, 입주민들에게 어떤 특별한 경험을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죠. 이러한 고민의 깊이는 또 하나의 차별화된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시원한 물소리 들으며 더위 추방

평촌센텀퍼스트의 롱테이크 촬영은 단지 동쪽에 자리 잡은 진경산수원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단지에 조성된 진경산수원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는데요. 바로 여러 개의 진경산수원이 단지 도로를 넘나들며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4.jpg
단지 도로를 넘나들며 조성된 여러 개의 진경산수원


일반적으로 진경산수원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조성돼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초점경관의 역할을 합니다. 여러 곳에서 시설을 바라보기 때문에 미술 장식품이나 문주목처럼 시선이 모이는 점(Point)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평촌센텀퍼스트의 진경산수원은 굉장히 넓은 공간입니다. 이 정도로 넓은 면적에 조성된 진경산수원은 시선이 모이는 초점경관에 머물지 않습니다. 입주민들은 연속해서 이어지는 석가산의 산세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마침내 이곳은 하나의 면(Polygon)의 경관으로 확장하게 되죠. 롱테이크 기법으로 구현된 자연 속 경험은 그랜드아케이드를 넘어 이곳 진경산수원에서도 펼쳐지는 셈입니다. 

 

5.jpg

연못과 폭포 등 시원한 물의 경관을 마련한 진경산수원


진경산수원에는 쌓아 올린 운암석 앞으로 연못과 폭포 등 청량한 물의 경관을 마련했습니다. 운암석 뒤로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심어 녹색의 수벽(나무를 심어서 산울타리와 같은 벽을 조성하는 공법)을 두르고, 암석의 틈을 따라 반송과 삼색조팝, 눈주목 등 질감과 색감이 다양한 수목을 채웠죠. 연못 위로 마련된 데크 산책로를 따라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멀리 물러납니다. 
 

 곳곳 작은 휴게공간 ‘아늑한 휴식’

롱테이크로 구현된 평촌센텀퍼스트의 웅장한 경관 한편으로는 작은 휴게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습니다. 그랜드아케이드와 진경산수원이 많은 입주민이 모이는 공적 공간이라면, 집으로 들어가는 각각의 주동 앞 휴게공간은 사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죠. 이곳에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장치들이 마련돼 있을까요? 
 

 

6.jpg

매력적인 시설물들이 마련된 주동 앞 휴게공간


그랜드아케이드와 진경산수원이 시선을 열어 연속된 경관을 느낄 수 있게 했다면 주동 앞 휴게공간은 반대로 시선을 가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임시 벽과 주목, 측백나무 등의 상록침엽수로 공간을 구획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주변 시선으로부터 차단될 수 있도록 배려했죠. 차폐 시설은 1층 세대 입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 공간에서 사용되는 색깔 중 주제 색을 사용하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주제 색이 사람들의 기억에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죠. 우리가 스타벅스를 생각할 때 짙은 초록색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평촌센텀퍼스트의 주동 앞 휴게공간은 입주민들에게 강렬한 빨간색의 느낌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평촌센텀퍼스트의 조경공간은 어떠셨나요? 그랜드아케이드는 휴게공간과 녹지, 미술 장식품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매듭의 역할을 하고, 공간을 넘나드는 진경산수원은 한 폭의 산수화를 웅장하게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경공간은 한 컷의 장면으로 촬영된 롱테이크 기법처럼 연속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했죠. 영화에서 경험하는 깊은 몰입감이 짙어져 가는 녹음 속에서도 느껴보길 바랍니다.

이 게시물을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수